교육선교자료

  • 교육 >
  • 교육선교자료
기독교 윤리 - 최고의 선은 사랑
김병수 2011-03-17 추천 0 댓글 0 조회 700

최고의 善은 사랑

 

기독교 윤리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무척 다양하다. 그리스의 고전윤리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선(善)을 찾는데 그중 최고의 선은 행복(eudemonia)이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행복은 모든 선의 목적이자 결과이다. 그래서 행복은 그 자체로 궁극적이고 자족적(自足的)이다.

 

노자(老子)는 도덕경에서 최고의 선을 도(道)라 설파했다. 도를 얻음으로써 선인(善人)이 된다고 했다. 노자는 인간관계 속에 선이라는 지혜의 사슬이 가득 묶여 있음을 알려주고, 사람이 선으로 시작해 선으로 마쳐야 비로소 도를 행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성서 역시 선을 강조한다. 신약성서에서 자주 나오는 형용사 ‘선하다’는 헬라어로 아가토스(agathos)이다.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의미로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낼 때 주로 쓰인다. 반면 동의어 칼로스(kalos)는 인간관계 속에서의 선함을 나타낸다. 특별히 디도서는 두 가지 뜻의 선을 혼용해서 사용한다(1:8, 1:16, 2:3, 2:5, 2:7, 2:10, 2:14, 3:1, 3:8, 3:14). 사도 바울은 젊은 목회자 디도에게 모든 선한 일에 본을 보이고 힘써야 한다고 독려한다. “이 말이 미쁘도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이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딛 3:8)

 

더 나아가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다음과 같이 위대한 고백을 한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자 모두는 선을 행하기 위해 새로이 지어진 하나님의 걸작품이라는 것이다. 말씀으로 빚어지고 다듬어진 존재,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사는 존재는 선한 일, 곧 지고선(至高善)인 아가페를 실천하는 자이다. 고린도전서 13장은 가장 좋은 길(善), 아가페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기독교윤리 역시 기독교인이 살아가면서 행하여야 할 목적으로서 선(善)을 묻는다. 그 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도 아니고, 노자의 도도 아니다. 오로지 하나님이 나타내시고 성취하신 거룩한 뜻인 아가페다. 성육신 사건은 아가페의 현현이고, 십자가 사건은 아가페의 완성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서 아가페를 현실로 보여 주었다. 기독교윤리는 신앙인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아가페의 현실을 세계 속에서 가능하도록 요청한다.

 

기독교인은 행복해지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이 지음 받은 피조물이 아니다. 오로지 아가페를 세계 속에서 구현하기 위한 존재이다. 오늘날의 기독교인은 도덕적 행위의 최종 목적을 아가페에 두려 하지 않고,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교회 공동체 안에 온갖 행복론이 난무한다.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기독교윤리의 왜곡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행복의 시작이 아니라 아가페 그 자체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해진다.

 

강병오 교수 (서울신학대학교)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2011년 부활절은 '회개, 자성, 절제' 김병수 2011.03.17 0 475
다음글 캄보디아 씨엔립 조선소 지원 김병수 2011.03.12 0 589

138-200 서울특별시 송파구 송이로 199 현대상가 2, 3층 TEL : 02-401-1191 지도보기

Copyright © 문정제일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9
  • Total3,113,699
  • rss
  • facebook
  • 모바일웹지원